편집자 注: 이 글은 1958년 ‘사상계’ 8월호에 실렸다. 원문은 한길사에서 나온 ‘함석헌 전집14’에서 옮겨왔다. 본문의 중간제목은 원문대로 살렸다. 김언호씨 추천.
  
  
  역사의 뜻
  
  나라를 온통 들어 잿더미, 시체 더미로 만들었던 6·25 싸움이 일어난 지 여덟 돌이 되도록 우리는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역사의 뜻을 깨달은 국민이라면 이러고 있을 리가 없다. 우리 맘이 언제나 답답하고 우리 눈알이 튀어나올 듯하고 우리 팔다리가 시들부들 늘어져만 있어 아무 노릇을 못하지 않나?
  

 역사적 사건이 깨달음으로 되는 순간 그것은 지혜가 되고 힘이 되는 법이다. 6·25 사변은 아직 우리 목에 씌워져 있는 올가미요 목구멍에 걸려 있는 불덩이다. 아무런 불덩이도 삼켜져 목구멍을 내려가면 되건만 이것은 아직 목구멍에 걸려 있어 우리를 괴롭힌다. 그러므로 밥을 먹을 수 없고 숨을 쉴 수 없고 말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어서 이것을 삼켜 내려야 한다 혹은 이 올가미를 벗어 버려야 한다.
 

 올가미가 그냥은 아니 벗겨진다. 죽을 힘을 다해 벗겨야지, 코가 좀 벗어지고 귀가 좀 찢어지고 이마가 좀 벗어지고 턱이 부스러지는 한이 있더라고 벗겨야 한다. 불덩이가 그대로는 아니 넘어간다. 눈을 딱 감고 죽자 하고 혀를 깨물고 목구멍을 좀 데면서라도 꿀꺽 삼켜야 한다. 역사적 사건의 뜻을 깨달음은 불덩이를 삼킴이요 올가미를 벗김이다.

  모든 일에는 뜻이 있다. 모든 일은 뜻이다. 뜻에 나타난 것이 일이요 물건이다. 사람의 삶은 일을 치름(經驗)이다. 치르고 나면 뜻을 안다. 뜻이 된다. 뜻에 참여한다. 뜻 있으면 있다(存在). 뜻 없으면 없다(無). 뜻이 있음이요, 있음은 뜻이다. 하나님은 뜻이다. 모든 것의 밑이 뜻이요, 모든 것의 끝이 뜻이다. 뜻 품으면 사람, 뜻 없으면 사람 아니다. 뜻 깨달으면 얼(靈), 못 깨달으면 흙. 전쟁을 치르고도 뜻도 모르면 개요 돼지다. 영원히 멍에를 메고 맷돌질을 하는 당나귀다.
  
  역사에 대한 반성
  
  6·25 싸움은 왜 있었나? 나라의 절반을 꺾어 한 배 새끼가 서로 목을 찌르고 머리를 까고 세계의 모든 나라가 거기 어울림을 하여 피와 불의 회오리바람을 쳐 하늘에 댔던 그 무서운 난리, 사람이 죽고 상한 것이 얼만가? 물자의 없어진 것이 얼만가? 남편 잃고 반쪽 사람이 된 과부가 얼만가? 어미 애비 잃고 고아가 된 어린이가 얼만가? 거기 써 버린 쇠를 쌓으면 산이 될 것이요, 거기 태워 버린 기름을 모으면 바다가 될 것인 이 끔찍한 전쟁은 도대체 왜 일어났을까? 바다를 뒤집는 고래 싸움은 하필 이 가엾은 새우 등에 터졌을까?


  밤거리를 헤매다가 도둑놈에게 욕을 본 계집도 그 상하고 더러워진 몸을 어루만지며 생각을 해본다면 그 까닭이 어디 있음을 알 것이요, 대낮에 술에 취해 자다가 온 세간을 다 불태워 버린 사내도 잿더미에 마주 앉아 생각을 해본다면 그 잘못이 어디 있음을 알 것이다. 이 역사의 한길에 앉은 고난의 여왕은 제 욕보고 뺏김당한 것이 어떤 까닭임을 생각하나, 아니하나?


  6·25 싸움의 직접 원인은 38선을 그어놓은 데 있다. 둘째 번 세계전쟁을 마치려 하면서 로키산의 독수리와 북빙양의 곰이 그 미끼를 나누려 할 때 서로 물고 당기다가 할 수 없이 찢어진 금이 이 파리한 염소 같은 우리나라의 허리동강이인 38선이다. 피가 하나요, 조상이 하나요, 말이 하나요, 풍속·도덕이 하나요, 이날껏 역사가 하나요, 이해 운명이 한 가지인 우리로서는 갈라질 아무런 터무니도 없다. 이 싸움의 원인은 밖에 있지 안에 있지 않다. 우리는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진 새우다.


  그러나 다시금 한번 생각해볼 때 아무리 싸움은 다른 놈이 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왜 등을 거기 내놓았던가? 왜 남의 미끼가 됐던가? 거기는 우리 속에서 찾을 까닭이 있어야 할 것이다. 모든 역사적 현실은 자신이 택한 것이다. 쉬운 말로 만만한 데 말뚝이지, 만만치 않다면 아무 놈도 감히 말뚝을 내 등에 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른바 약소민족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에 진 일본의 식민지였던 것이 원인 아닌가? 그렇다면 미운 것도 미국도 소련도 아니며, 일본도 아니요 우리 자신이다. 왜 허리 꼬부린 새우가 됐던가?


  우리는 왜 남의 식민지가 됐던가? 19세기에 와서 남들은 다 근대식의 민주국가를 완성하는데 우리만이 그것을 못했다. 왜 못했나? 동해 바다 섬 속에 있어 문화로는 우리에게조차 업신여김을 당하던 일본도 그것을 하고 도리어 우리를 덮어누르게 되는데, 툭하면 예의의 나라라 ‘작은 중화’라 자존심을 뽐내던 우리가 왜 못했나? 원인은 여러 말 할 것 없이 서민, 곧 이 백성이란 것이, 이 씨알이 힘있게 자라지 못했기 때문 아닌가? 남들은 아무리 봉건제도라 하며 정치가 아무리 본래 백성 부려먹는, 씨알 짜먹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 ‘오리’인 서민계급을 길러가며 생산방법을 가르쳐주며, 그 금알을 짜먹을 만한 어짊과 인정은 있었는데, 우리나라 시대시대의 정치업자놈들은 예나 이제나 한결같이 그저 짜먹으려만 들었다.


  그러므로 백성은 줄곧 말라들기만 했다. 민족국가, 경제에 있어서 자본주의 국가는 씨알 중에서도 중산층의 나라다. 중산층이란 다른 것 아니요 그 사회제도가 씨알이 자라 제 힘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중산층이 튼튼히 있으면 그 나라가 성해가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중산층이 살아 있는 만큼 씨알의 발달이 되어 있는 나라는 마치 맨 밑의 곧은 뿌리가 잘 자란 나무 같아 어떤 역사적 변동이 와도 거기에 맞추고 그 기회를 타고 이겨 살아나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는 망하는 수밖에 없다.


  민족주의의 물결이 세계를 뒤엎고 일어날 때 우리만이 그것을 타지 못하고 떨어져 민족 전체가 남의 종이 됐던 것은, 우리나라의 씨알이 양반이라는 이리 떼보다 더한 짜먹는 놈들의 등쌀에 여지없이 파괴를 당하였기 때문이다. 민족국가 시대에 제 노릇을 못하고 남의 종이됐기 때문에 그 다음 시대에도 다른 데 종으로 팔리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됐다 할 수 있으나 참 해방은 조금도 된 것 없다. 도리어 전보다 더 참혹한 것은 전에 상전이 하나였던 대신 지금은 둘 셋이다. 일본시대에는 종살이라도 부모 형제가 한 집에 살 수 있고 동포가 서로 교통할 수는 있지 않았나? 지금 그것도 못해 부모 처자가 남북으로 헤어져 헤매는 나라가 자유는 무슨 자유, 해방은 무슨 해방인가?


  남한은 북한을 소련·중공의 꼭두각시라 하고, 북한은 남한을 미국의 꼭두각시라 하니 남이 볼 때 있는 것은 꼭두각시뿐이지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나라 없는 백성이다. 6·25는 꼭두각시의 놀음이었다. 민중의 시대에 민중이 살았어야 할 터인데 민중이 죽었으니 남의 꼭두각시밖에 될 것 없지 않은가?


  잘못은 애당초 전주 이씨에서 시작이 됐다. 압록강, 두만강에 울타리를 치고 그 밖으로는 중국 만주의 이리·호랑이에게 꼬리를 치며 미끼를 바치는 대신 이 파리한 염소를 사정없이 악착스럽게 더럽게 짜먹기 시작하던 이조 500년에 이 나라는 결딴이 나고 말았다. 그 염소가 행여 울타리를 깨칠까 봐 그들은 임진강 이북을 관서니 관북이니 평안도 상놈이니 해서 아주 대강이를 눌러 버렸다. 이놈의 38선은 운명의 남북 경계선이다. 민족 해방의 물결이 태평양에서 밀려들어 이 잠자는 민족에게도 거기 맞춰 깬 혼이 몇 개 없었던 것은 아니건만 매양 일을 그르친 것은 이놈의 남북 충돌이었다. 6·25 동란 때 부산 부두에 몰려 있어 말라가는 논귀에서 송사리의 살림을 하면서도 놓지 못한 것은 당파싸움, 오늘날까지도 그것인데 당초에 그 시작은 전주 이씨네의 정치에 있다. 임진란에 나라가 온통 일본의 말발굽에 밟힐 때 민중의 충성은 커녕 동정 하나 못 받으며 밤도망을 해 임진강을 넘어가던 선조가 압록강가에서 감상적인 울음을 운 일이 있지 않나?
  
  나라일 엉망진창인데
  누가 충성 다할꼬
  서울을 버릴 때 큰 뜻을 남겼으니
  도로 찾음은 그대들 믿을 뿐
  관산 달에 슬피 울고
  압강 바람 마음 상해라
  그대들이여, 오늘을 지내고도
  오히려 동·서 또 있겠는가
  
  알기는 알았건만! 부산서도 그 울음을 울었던가, 아니 울었던가? 알기나 하면 무엇해? 울기만 하면 무엇해? 울려거든 민중을 붙잡고 울었어야지. 민중을 잡아먹고 토실토실 살찐 벼슬아치를 보고 울어서 무엇해? 소위 측근자 비서 무리를 보고 울어 무엇해? 나라의 주인은 고기를 바치다 바치다 길거리에 쓰러지는 민중이지 벼슬아치가 아니다. 구원이, 땅에 쓰러져도 제 거름이 되고 제 종자가 되어 돋아나는 씨알에 있지 그 씨알 긁어먹는 손톱 발톱에 있지 않다.
  
  38선은 언제 그어졌나
  
  그러므로 6·25의 남북 싸움의 속 원인은 스탈린, 김일성, 루스벨트에 있지 않고 이성계에 있다. 이북을 상놈의 땅으로 금을 긋던 날 38선은 시작됐다. 아니다. 거기서도 더 올라간다. 고려 중엽에 김부식이가 묘청의 혁명운동을 꺾어 버리던 날, 평양 이북을 적국처럼 보기 시작하던 날 벌써 일은 글러졌다. 아니다. 그것도 아니다. 김춘추, 김유신이 당나라에 불티나듯 드나들던 날, 진흥왕이 기껏 간 것이 삼각산이어서 거기 비석을 세우던 날 기운은 벌써 빠졌다. 아니야 온조가 한가람의 딴전을 벌이던 날 벌써 문제가 틀어졌다. 우리나라의 정신이 없다면 모르지만 있다면 그 등이 아무래도 고고려적인 성격이 아닌가? 그러니 고구려가 망하고 신라가 통일이랍시고 나라의 떨어지다 남은 한 귀를 들고 서면서부터 잔약질인 것 같은 신라적 백제적인 것이 줄거리 노릇을 하게 될 때 한 번 꺾였다. 고려시대만 해도 그 남은 기상이 있었는데 묘청의 운동이 실패로 돌아갈 때 그 두 번째 꺾인 것이다. 이조가 스스로 명나라의 속국으로 만족할 때 세 번째 꺾였다. 등심뼈가 꺾이고 끄트머리 신경만 남았을 때 있을 것은 저림과 비꼬임과 쥐 일어남밖에 없지 않은가?
  하나님이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땅에 남북의 다름을 만들었다. 인천만에서 원산만으로 긋는 선이 地殼(지각)이 약한 곳이어서 그리로 온천이 많이 터져나오고 그 이북과 그 이남이 지리가 서로 다르지만, 이것은 人文(인문)으로도 약한 경계선이다. 단군 때부터 漢四郡(한사군), 신라, 고려, 내리내리 늘 민족 성격의, 문화의, 사회생활의 경계선이 되어왔다. 어느 모로 보나 하나요, 하나일 수밖에 없는 나라, 이 겨레에 그 금이 놓여 있는 것은 무슨 시련의 선인가? 무슨 숙제의 선인가? 하나님은 아니 믿으려면 아니 믿어도 좋지만 있는 사실에 눈을 감을 수는 없고 그것을 정신적으로 이겨 넘지 않는 한 역사의 바른 걸음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6·25의 뜻은 눈앞의 사실만을 볼 것 아니라 저 먼 역사의 흐름에서부터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뜻을 깨닫는 것은 본래 새 점을 한 곧은 줄로 맞추는 일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일직선상에 놓여져 이 끝에서 저 끝이 내다뵈는 것이 뜻을 앎이다. 그것을 하는 자만이 역사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다. 사람이 예와 이제를 뚫지 못하면 마소〔馬牛〕에 옷 입힌 것이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나타나서 세계역사를 한 번 새롭게 하려 할 때, 그 앞에 서서 요한이 외치기를 “빈 들에 주의 길을 예비하라, 하나님의 곧은 길을 닦아라!” 했다. 하나님의 길은 역사의 길이다. 역사의 길은 언제나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점이 일직선으로 놓여 내다보여서만 나갈 수 있다. 그러므로 잘못된 것은 曲折(곡절), 波瀾(파란)이 많다고 한다. 역사를 치르는 인간의 할 일은 늘 곧은 줄로 되지 못한 사실의 과정을 뜻으로 바로잡는 데 있다. 6·25 싸움이라는 역사적 현실에 서서 지나온 것을 내다볼 때 그것은 역사 처음에서부터, 민족 성격에서부터, 내다뵈는 것임을 알 수 있고 돌아서서 앞을 볼 때 “아, 그것은 이렇게 되잔 것이다.” 하는 것이 보여지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것만이 우리를 역사적 현실에서 건진다.
  
  역사의 숙제
  
  우리나라의 역사적 숙제는 세 마디로 말할 수 있다. 하나는 통일정신이요 하나는 독립정신이요 또 하나는 신앙정신이다. 그리고 이 셋은 결국 하나다. 나는 우리 역사가 고난의 역사라고 보는데, 그렇게 보면 세계 어느 민족의 역사나 고난의 역사 아닌 것 없고, 인류 역사가 결국 고난의 역사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 역사는 고난 중에서도 그 主演(주연)으로 보는데, 그 고난의 까닭은 이 세가지 문제에 있다. 5000년 역사의 내리밀림이 이조 500년인데 그것은 그저 당파싸움으로 그쳤다. 아무도 이 당파싸움의 심리를 모르고는 우리나라 역사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500년의 참혹한 고난은 이 한 점에 몰린다. 그러므로 문제는 하나 되는 데 있다. 민족으로 당하는 모든 고난, 그 원인이 우리 잘못에 있든 남의 야심에 있든 그 뜻은 작은 생각 버리고 크게 하나〔大同〕돼 봐라 하는 하나님의 교훈으로 역사의 명령으로 알아야만 우리는 역사적 민족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 되지 못하는 원인을 찾으면 독립하지 못하는 데, 제 노릇하지 못하는 데 있다. 하나 됨은 남의 인격을 존중해서만 될 수 있는 일인데 남의 인격을 아는 것은 내가 인격적으로 서고야 될 일이다. 정말 제 노릇 하는 사람은 제가 제 노릇을 할 뿐 아니라 남을 제 노릇이도록 만든다. 거지에게도 자존심은 있다. 인격은 곧 自尊(자존)이다. 스스로 높임이 스스로 있음 〔自存(자존)〕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독립정신이 부족하다는 말은 스스로 비위에 거슬리는 말이지만 남이 되어서 볼 때, 아니라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에 손을 내민 백제의 일이 그것이요, 고려도 그것이요, 이조는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지리적 조건에 핑계를 대면 댈 수도 있고 주위 민족의 탓을 하려면 할 수도 있지만 인격엔 핑계가 없다. 핑계 되는 그것이 그 정신 아닌가? 우주를 등에 지는 것이 인생이요 정신이지, 나 밖의 다른 책임자를 찾는 것은 역사를 낳는 인격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어려운 지리적, 역사적 환경조차도 역사적 의지가 우리에게 명하는 “너는 역사의 주인이 돼 봐라.” 하는 숙제로 알아야만 이긴 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또다시 독립정신은 어디서 나오나? 깊은 인생관, 높은 세계관 없이는 될 수 없다. 그럼 그것은 어디서 나오나? 위대한 종교 아니고는 될 수 없다. 종교란 다른 것 아니요 뜻을 찾음이다. 현상의 세계를 뚫음이다. 절대에 대듦이다. 하나님과 맞섬이다. 하나님이 되잠이다. 하나를 함이다. 그러므로 이 이상의 일이 있을 수 없고 이밖에 일이 있을수 없다. 이것이 맨 처음이요 이것이 맨 끝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따져 올라가면 여기 이르고 만다. 일찍이 역사상에 위대한 종교 없이 위대한 나라를 세운 민족이 없다. 종교가 잘못되고 망하지 않은 나라 없다. 어떤 나라의 문화도 종교로 일어났고 종교로 망했다. 애급이 그렇고 바빌론이 그렇고 희랍이 그렇고 중국이 그렇다.
  우리의 근본 결점은 위대한 종교 없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100가지 폐가 간난(注: ‘가난’의 원말)에 있다 하지만 간난 중에도 심한 간난은 생각의 간난이다. 철학의 간난, 종교의 간난, 우리나라는 우선 물자의 간난 때문에 못사는 나라 아닌가? 중국 평원을 우리에게 주어 보라. 미국의 자원을 우리에게 주어 보라. 그래도 못살 것인가? 금수강산 이름은 좋지만 이 마른 뼈다귀 같은 산만을 파먹고는 힘이 날 수도 생각이 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아무래도 생명은 물질의 주인이지. 물자 간난의 원인은 인물 간난에 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어려워진 것은 당파싸움으로 인물을 자꾸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베인 나무는 10년이면 다시 설 수 있으나 인물은 죽이면 100년 길러도 다시 얻기 어렵다.
  왜 그렇게 어려운가? 정신이라 귀한 것이요, 생각은 하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재목은 숲에서야 나고 인물은 종교의 원시림에서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종교가 본래 깊지 못하다. 이것은 몽골민족의 通弊(통폐)다. 원나라가 세계를 휩쓸었으나 회오리바람처럼 지나가고 만 것은 깊은 정신문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리스는 손바닥 같은 반도지만, 그 문화는 아직 살지 않나? 일본이 크게 못된 것도 그 종교의 작고 옅음에 있다. 만주족이 중국을 온통 정복해 300년은 갔지만 아무런 깊은 것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여러 말 할 것이 없이 우리 고유한 종교가 시원한 것이 없지 않은가? 화랑도라 하지만 그 윤리적 철학적인 내용은 다른 데서 배운 것이지요, 그 외의 것은 이른바 화랑으로 그치고 말지 않았나. 화랑도로 역사를 살리지 못할 것이다. 너무 옅다. 너무 평면적, 낙천적이다.
  그러면 우리의 역사적 숙제는 이 한 점에 맺힌다. 깊은 종교를 낳자는 것, 생각하는 민족이 되자는 것, 철학하는 백성이 되자는 것. 그러면 6·25의 뜻도 어쩔 수 없이 여기 있을 것이다. 깊은 종교, 굳센 믿음을 가져라. 그리하여 네가 되어라. 그래야 우리가 하나가 되리라. 세계 역사는 이제 하나 됨의 직선 코스에 들고 있는 이때에.
  
  형제애를 통일로
  
  이것은 눈앞의 역사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이렇게 된다. 6·25 전쟁이 난 것은 그 뜻을 알고 본다면
  첫째, 이것은 참 해방이냐?
  둘째, 이 정권들은 정말 나라를 대표하는 거냐?
  셋째, 너희는 새 역사를 낳을 새 종교를 가졌느냐?
  참 해방이 됐다면 참 자유하는 민족이 되었다면, 미·소 두 세력이 압박을 하거나 말거나 우리는 우리대로 섰을 것이다. 해방 전까지 없던 남북한의 대립이 두 나라 군대가 옴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은 우리 국민정신이 진공 상태였던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형제 싸움은 일어났다. 남의 참견에 휘말려 동포가 서로 찌르고 죽인 다음에야 생각이 좀 나지 않을까?
  이 정권들이 정말로 이 나라를 위한 정권이라면, 정치하는 사람들이 정말 권세욕이 아니고 나라를 생각하는 정성이 있다면, 전쟁에도 좀더 백성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을까?
  이 민중에 참 종교가 있다면, 아무리 정치적 기술도 없고 경제의 힘도 군사의 힘도 없다 하더라도 환란 속에서도 좀더 힘있게 견디고 넘어진 중에서도 또 기운차게 일어서지 않았을까? 아무 밑천을 못 가지고도 없는 데서 새것을 지어내지 않았을까? “바로 돌아 앞으로!”하는 새 시대의 앞장을 아니 섰을까? 어느 시대나 새 시대의 주인이 되는 것은 가진 것이 없는 자인데.
  그런데 끔찍한 전쟁이 지나간, 지나간 것도 아니요 아직 목에 올가미로 목구멍에 불덩이로 걸려 있지만, 이 오늘에 있어서 결과는 어떤가? 완전히 낙제라 할 수밖에 없다.
  남쪽 동포도 북쪽 동포도 동포라고는 하면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칼을 겨누고 형이 동생에게 총을 내미는 이 싸움인 줄은 천이나 알고 만이나 알면서도 쳐들어온다니 정말 대적으로 알고 같이 총칼을 들었지 어느 한 사람도 팔을 벌리고 “들어오너라, 너를 대항해 죽이기보다는 나는 차라리 네 칼에 죽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땅이 소원이면 가져라, 물자가 목적이면 마음대로 해라, 정권이 쥐고 싶어 그런다면 그대로 하려무나. 내가 그것을 너하고야 바꾸겠느냐? 참과야 바꾸겠느냐?” 한 사람은 없었다. 대항하지 않으면 그저 살겠다고 도망을 쳤을 뿐이다. 그것이 자유하는 혼일까? 사랑하는 마음일까? 만일, 정말 그런 혼의 힘이 국민 전체는커녕 일부라도 있었다면 소련, 중공이 감히 강제를 할 수 있었을까? 우리 속에 참으로 인해 길러진 혼의 힘이 도무지 없음이 남김 없이 드러났다. 해방이 우리 힘으로 되지 않았으니 해방이 될 리 없다. 이제라도 우리 손으로 다시 해방을 해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자 남북이 서로서로 상대방을 시비할 뿐이었다. 네 잘못이 내 잘못 아니냐 하는 태도가 없었다. 전쟁 터지자 나타난 것은 국민의 냉담한 태도였다. 즉 국민들이 정부를 신용하지 않았다. 전쟁을 정권 쥔 자들의 일로 알았지 국민의 일로 알지 않았다. 사실 국민이야 싸울 아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소련, 미국이 붙였다 하겠지만, 아무리 잘 붙여도 싸우지 않으려는 형제를 억지로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속아서 그 앞잡이 된 것은 정권 쥔 자들이요, 속은 것은 욕심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렇게 큰 전쟁이 일어나는데 그날 아침까지 몰랐으니 정말 몰랐던가? 알고도 일부러 두었는가? 몰랐다면 성의 없고 어리석고, 알았다면 국민을 팔아넘긴 악질이다. 그러고는 밤이 깊도록 서울을 절대 아니 버린다고 열 번 스무 번 공포하고 슬쩍 도망을 쳤으니 국민이 믿으려 해도 믿을 수 없었다. 저희들도 서로 살겠다고 도망을 한 것이지 정부가 피난한 것은 아니었다. 문서 한 장, 도장 하나 아니 가지고 도망한 것이 무슨 정부요 관청인가? 그저 나도 너도 피난가서 다시 거기서 만났으니 또 사무라고 본 것뿐이었다. 민중이 신용 아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전쟁이 지나간 후 서로 이겼노라 했다. 형제 싸움에 서로 이겼노라니 정말은 진 것 아닌가? 어찌 승전 축하를 할까? 슬피 울어도 부족할 일인데. 어느 군인도 어느 장교도 주는 훈장 자랑으로 달고 다녔지 “형제를 죽이고 훈장이 무슨 훈장이냐?” 하고 떼어 던진 것을 보지 못했다. 노자는 전쟁에 이기면 喪禮(상례)로 처한다 했건만, 하기는 제2국민병 사건을 만들어내고 졸병의 옷·밥을 깎아서 제 집 짓고 호사하는 군인들에게 바라는 것이 과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라의 울타리일까?
  한 번 내리 밀리고 한 번 올려 밀고, 그리고는 다시 38선에 엉거주춤 전쟁도 아니요 평화도 아니요, 그 뜻은 무엇인가? 힘은 비슷비슷한 힘, 힘으로는 될 문제 아니란 말 아닌가? 이 군대 소용없단 말 아닌가?
  전쟁 중에 가장 보기 싫은 것은 종교단체들이었다. 피난을 가면 제 교도만 가려 하고 구호물자 나오면 서로 싸우고 썩 잘 쓴다는 것이 그것을 미끼로 교세 늘리려고나 하고, 그리고는 정부·군대의 하는 일, 그저 잘한다 잘한다 하고 날씨라도 맑아 인민군 폭격이라도 좀더 잘 되기를 바라는 정도였다. 대적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 정치하는 자의 잘못을 책망하는 정말 義(의)의 빛을 보여주고, 그 때문에 핍박을 당한 일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 간난 중에서도 교회당은 굉장하게 짓고 예배 장소는 꽃처럼 단장한 사람으로 차지, 어디 베옷 입고 재에 앉았다는 교회를 보지 못했다.
  종교인이나 비종교인이나 향락적인 생활은 마찬가지고 다른 나라 원조는 당연히 받을 것으로 알아 부끄러워할 줄 모를 뿐 아니라 그것을 잘 얻어오는 것이 공로요 솜씨로 알고, 원조는 받는다면서, 사실 나라의 뿌리인 농촌은 나날이 말라들어가는데 도시에서는 한 집 건너 보석상, 두 집 건너 요리집, 과자집, 그리고 다방, 댄스 홀, 연극장, 미장원이다. 아무것도 없던 사람도 벼슬만 한번 하고 장교만 되면 큰 집을 턱턱 짓고 길거리에 넘치는 것은 오늘만을 알고 나만을 생각하는 먹자 놀자의 기분뿐이지 어느 모퉁이에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먼 앞을 두고 계획을 세워 살자는 비장한 각오를 한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이것이 전쟁치른 백성인가? 전쟁 중에 있는 국민인가? 이것이 제 동포의 시체 깎아 먹고 살아난 사람들인가?
  그리고 선거를 하면 노골적으로 내놓고 사고팔고 억지를 쓰고 내세우는 것은 북진통일의 구호뿐이요, 내 비위에 거슬리면 빨갱이니, 통일하는 것은 칼밖에 모르나? 칼은 있기는 있나? 옷을 팔아 칼을 사라고 했는데 그렇게 사치한 벼슬아치들이 칼이 있을까? 정육점의 칼 가지고는 나라는 못 잡을 것이다.
  
  낙제한 국민
  
  국민 전체가 완전히 낙제를 했다. 그러나 여기 우리의 낙제에도 불구하고 잊어서는 아니 되는 커다란 일이 드러난 것이다. 그것은 6·25 싸움에 유엔이 손을 내밀었다는 시실이다. 이것이 미래의 역사를 위해 크게 뜻이 있는 일이다. 역사상 일찍이 이런 일은 없었다. 어느 한 나라의 문제로 인해 세계 모든 나라가 단체적으로 간섭을 하여 국제군대를 보낸 일은 없었다. 만일 유엔이 재빨리 그의 있는 손을 내밀지 않았더라면 일은 어찌 됐을지 알 수 없다. 아니다, 모르는 것 아니라 뻔하다. 우리나라 전체는 공산화됐을 것이다. 그렇게 됐으면 일본·필리핀 문제가 아닐 뿐 아니라 미국이 태평양 저쪽에서 재즈 곡을 들으며 평화의 꿈을 꾸고 있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 때의 일을 책임졌던 트루먼 대통령, 미국민의 여론, 그 때 유엔 기관의 여러 사람들의 어진 결단에 감사를 하지만, 미국으로서도 유엔으로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참 利(이)는 義다. 유엔군의 충돌은 역사의 명령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밝히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德(덕)을 본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우리야 물론 덕을 입었다. 멸망을 면했으니 덕이요, 더구나 정신면에 있어서 영향은 크다. 전쟁 후 무너져가는 민심을 이만큼이라도 거두고 우리나라의 썩고 썩은 관료정신을 가지고도 이만큼 나갈 수 있는 것은 유엔군이 출동해서 그 의기가 고무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야 물론 덕을 입었지만 그보다 뜻깊은 것은 유엔 그 자체가 그것으로 인해 강해지고 그 걸음이 확실해졌다는 사실이다. 만일 유엔이 이때에 한국 일을 모른다 했다면 미국의 신용은 물론 유엔도 있느냐 없느냐 하는 지경에 떨어졌을 것이다. 우리는 유엔이 장차 올 역사를 위해 아주 완전한 것으로는 보지 않으나 유엔이 내일의 세계를 낳는 산파역을 할 것을 믿기를 서슴지 않는데, 처음 일어서는 자신은 6·25에서 얻었다.
  6·25의 중심 되는 뜻은 하나 되는 세계로 달리는 한 걸음이란 데 있다.
  국민 전체가 회개를 해야 할 것이다. 예배당에서 울음으로 하는 회개말고(그것은 연극이다) 밭에서, 광산에서, 쓴 물결 속에서, 부엌에서, 교실에서, 사무실에서, 피로 땀으로 하는 회개여야 할 것이다.
  누구를 나무라는 것 아니요 책망하는 것도 아니다. 나 자신을 보고 하는 말이지. 죽지 못하고 부산까지 피난을 갔던 나는 완전히 비겁한 자요, 미워하는 자요, 어리석은 자다. 거기에서 돌아와서도, 오늘까지 맛에 팔려 사는 나는, 평안을 탐하는 나는, 완전히 음란한 자요, 악한 자요, 속된 자요, 거룩을 모르는 자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말을 하는 것은 말을 파는 자요, 진리를 파는 자요, 하나님을 팔아 더럽히는 자다. 만번 죽어 마땅한 나, 오늘까지 살리신 것은 그 죄 속하라 함이 아닐까? 무슨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야 그 죄를 속할까?
  하나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기소서!
  

Posted by 상실의 시대에 사랑을 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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