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데리고 교회로 다시 갔다. 

 

가는 길에 요한 형을 만났다.

 

 

우리는 피곤해서,

 

교회 식탁에 엎드려 잠시 잤다.

 

요한 형에게

 

그 아이에 관해서

 

솔직하게 말했다.

 

형은 가출청소년이 얼마나 위험한

 

삶을 살아가는지. 설명해주셨다.

 

 

배려를 하면서, 진심이 담긴

 

따뜻한 말이였다.

 

유가네에서 다 같이 밥을 먹었다. 요한 형은 감사하게도 내게 "넌 정말 어린 나이에도 대단한 것 같아. 정말 좋은 일을 했어. 한 사람의 인생을 구한 거야."라고 하셨다. 또 그 말씀을 하셨다. 감사했다. 아이는 대장 옆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나중에 아이가.

 

요한 형이 제일 좋았다고 말했다.

 

 

 

우리는

 

(내가 팀이 모이는 장소를 잘못알고 있었던 관계로... 우리는 나중에 복사골로 향하게 됐다.)

 

버스를 타고 복사골로 갔다.

 

 

 

그곳에는 문용 형이 계셨다.

 

형에게도 솔직히 아이에 관해서 말했다.

 

아이는 "아는 동생"이라고만 자기를 소개해달라고 했지만,

 

나는 그럴수 없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일하는

 

가출청소년들을 돕고, 평범한 삶으로 돌려온

 

사람들이였기 때문이였다.

 

 

형은 아이에게 가출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솔직히. 아주 솔직히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나중에 온 팀원들에겐...

 

살짝 아이에 대해 숨기셨다.

 

 

아이를 배려하신 것이다.

 

워크샵이 시작되었다.

 

나는 친구를 마중나가기 위해.

 

눈이 오는 부천 하늘을 신문으로 이었다.

 

구겨진 천구 위로 떨어진 흰 덩이들이

 

내 목도리에 달라붙어왔다. 신문들은 젖었고,

 

친구와 만나 워크숍에 나도 시작되었다.

 

 

원래 내가 가르치는 시간이 아니라, 배우는 시간이였으나..

 

 

요한 형과 문용 형이 내게

 

참여를 바라셔서...

 

 

"내 안에...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가출했던.

 

                자살시도들.

 

                 정신병원으로 스스로 향하였던 고등학교 시절.."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아이와 난 다른 조에 속해서.

 

그 아이는 내 슬픈 과거들을 듣진 못했을 것이다.

 

 

아이는 우리 대장(교회 사모님)옆에서 여러가지를 듣고,

 

울고. 또 울었다.

 

 

아이는 여전히 부모님에게. 돌아가지 않겠다 말하였다.

 

연락하고 싶지 않다 말하였다.

 

독립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Posted by 상실의 시대에 사랑을 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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