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 어떤 사람이나 존재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마음. 또는 그런 .

네이버 국어사전에 찾아보니, 이렇다.

나는 지금 4주째, 온누리 교회 CH630에서 "우리 결혼할까요?" 라는 특집 설교들의 연극에 남자배우로 출연중이다. 동시에 대본도 쓴다.

이번주가 마지막 설교다.


목사님들과 순장님들께서 내게 주신 대본 지을 '재료들'은 이러하다.

1. '사랑'이 결혼의 시작이고, 정점이고, 종점이고,
2. '사랑'하기에 함께 있고 싶고, 함께 하고 싶어 결혼하게 됩니다.
3. 결혼하고서 '진짜 사랑'을 배우게 된다.

4. 콩깍지가 벗어지면서 놀라게 되었다가, 진짜 사랑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5. 사랑의 완성은 진행형이고, 노력이다.

6. 하나님 외에 영원한 건 없으니, 우리 평생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자.

7. 가슴 뭉클한 거..


덧 붙여서 이렇게 왔다ㅋ


회현 형제님.
대본 부탁드려요.
무지 바쁘신데,
죄송해요.



에효..ㅋㅋ

우리 승연 누나랑 통화하니,

누나가 지방 공연가셔서 또 눈도 많이 와서

바쁘시단다ㅠ 나에게 써달라고 하시네...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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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내 어둠들이다.

내가 했던 잘못들, 실수들, 못된 말들 그런 것들이다.


둘째는 그 안에서 빛나는 별들이다.

내가 사랑하고, 사랑했던 이들. 이유 없이, 바라지 않고 사랑했던 이들.

그리고 그 열매들이다.



에휴.


나는 나중에 예수님께 "너는 예술가 답게 살았다."는 말보다,

"너는 내 제자로 살았다."는 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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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머니와 같이 밥 먹고, 고구마 까먹으며 차 마시는 시간이 제일 좋다.

엄마랑 얘기하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다.


어머니는 나를 사랑한다.

이건 팩트다.


그런데, 가끔 의심이 들 때가 있는데..


바로 내가 지치고 아주 힘들어 어머니에게 말을 걸 때

엄마가 "나 일 때문에 바쁘니까. 말 걸지 마." 라던가.


내가 아주 배가 고파서 밥을 미리 해달라고 전화를 했는데,

엄마가 집에 늦게 들어온다거나


내가 몸이 아파서 약을 달라고 했는데,

시간이 늦어서 내일 아침에 주겠다고 한다던가 하면..


즉 내 아픔과 고통에 어머니가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면.. 나는 가끔 의심을 한다.


나를 낳은 어머니도 이럴진데.


-


별거 아니지만

20살 때 <탈무드>를 외웠었다.


그 때 가장 인상깊었던 얘기다.


샴 쌍둥이가 태어났다.

그 당시 가장 현명하다 소문 났던 랍비에게

"이 것은 둘 입니까? 아님 하나입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그 랍비가 대답하기를 "한 아기에게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 둘 다 울면 하나이고, 하나만 울면 둘 인 것 입니다." 라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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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19대 G-ANT 국장을 하게 되었다.


 나도 생각해보면, 참 딴따라 였다. 18대든, 19대든 전공 이놈의 연출 일이고, 스탭일이라고 하면... 학생회 일도 어느 정도 뒤로 미뤘었다. 그게 문제였다. 회장 후보로 나가고 싶었는데.. 학년 제한도 있고, 또 내가 학과나 전공에서 보인 태도와 달리, 총졸준에선 좀 학생회 일을 2차로 했었다. 그게 문제였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딴따라 인가 라는 것도 핑계일까.


 나는 19대를 하며, 너무도 소중한 동생 장형이를 만났다. 장형이는 18대에서 내가 컴국장을 하고 있을 때, 유진 차장을 도와, 밑에 있던 친구였는데, 19대에선 부회장을 하였다. 나보다 학생회 일에 성실했고, 또한 성격이 워낙 좋고, 보조를 누구에게나 다 맞출 수 있는 부드러운 성격에, 유한 얘라 18대 성철이 형이 부회장으로 그 얘를 낙점했다.  그러나, 이 떄 나는 또 다른 내가 아끼는 동생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왜, 쟤가 부회장을 해야 하는 건지. 다른 얘가 하고 싶을 수도 있는데" 나는 장형이가 너무 소중했다. 내가 너무 힘들 때마다, 나에게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었던 친구다. 나는 나중에 그 얘가 인도네시아(그 얘 고향이 인도네시아다.)에 살고 있으면, 내가 그곳에 놀러 갈 생각이 있다. 장형이를 보기 위해서다.


 나는 19대를 하며, 회장 친구와 크게 싸운 일이 있었다. 내가 총졸준 방을 나가기도 했었다. 그 이유는 그 친구의 친구가 학교 교직원이였는데, 그 교직원이 그러니까.. 나랑 동갑이거나 나이가 한 살 어릴 거다. 교직원이 나에게 이것 저것 캐물으며, 내가 누구고 직급이 누구냐고 물었었다. 나는 이런 전화를 처음 받아보는 데다가, 마치 나의 상급자처럼 하는 그 태도에 분노해서 블로그에 글을 올렸는데... 그 교직원 친구가 내 글을 보고, 다시 회장 친구에게 연락하고, 그 회장 친구는 나에게 화를 냈다. 그리고 내가 회장 친구에게 화를 냈다. 그 때, 그 교직원이 회장 친구의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교직원 분이 나에게 그렇게 갑처럼 했던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권력에 의존한 폭력. 그것이 너무 싫었다.


 동시에 배운 것도 분명히 있었다. 바로, 글 SNS를 통한 폭력이다. 나는 하루 방문자 200 조금 넘는 블로그들을 운영하고 있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은 그만한 영향력을 갖는다. 그런데, 내 글이 만약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된다면, 그리고 명예훼손이 된다면. 그건 분명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 후로, 나는 글을 쓸 때 조심해서 쓰고 있다.


 또 하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범이다. 나는 회장 친구에게 화를 내며, 욕들을 했는데.. 그건 분명 내 잘못이다. 욕을 함부로 해선 안되는 것이였다. 화를 더디내라 하지 않는가. 그 단톡방에 그리스도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안 믿는 친구도 있었는데.. 내 모습을 보고, 무슨 선함이 되겠는가 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일깨워준 연주에게 고맙다. 연주는 내가 잘한 줄만 알고 있는 나를 바로잡아 주었다. 그 점에서 연주에게 매우 고맙다. 그러나, 연주가 내 입장을 못 이해하고 나에게 뭐라 한 것은 아쉬웠다.


 또 내가 느낀 것은 성실의 중요함이다. 나는 예술과 내 분야에 있어선, 정말 성실하려 한다. 그러나, 총졸준을 정말 사랑하지만... 일에 있어선 예술보다 조금 후 순위로 두었었다. 그러다 보니, 그것을 느끼는 다른 친구들과 회장 친구에게 내가 회장 후보로 보이지 않지 않았냐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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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대 생활은 1학년 2학기 11월부터 크게 달라지게 되는데,

동굴 같았던 우리 학과 생활을 벗어나

학교 사회로 진출했던 것이다.

 

물론 내가 원해서 그리했던 것은 아니였다.

대부분의 내 인생의 일들이 그러하듯, 그것도 외부에서 나에게 파도처럼 덮쳐왔다.

 

성철이 형이 갑자기 17대 졸준 회장 성빈이에게서 회장 출마 콜을 받은 것인데,

2일 후가 선거 운동의 시작이였다. 그리고 형은 오케이를 했고, 그러면서 나에게 같은 예대 기모임 때 기도 같이 좀 하고, 같이 밥 좀 몇 번 먹고, 형의 무용과 힘든 생활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해줬다는 이유로.. 형에게 붙잡혀 선거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경선에서 힘겹게 이긴 뒤,

나는 18대의 국장이 되었다.

 

내가 18대 국장을 하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1학기 때, 국장이면서도... 2학년인데 졸업공연 조연출과 조명 디자이너를 동시에 맡았기에,. 학생회 일을 거의 못했었다. 그리고 그 일을 조유진 이란 여동생이 대신 해줬다. 나는 2학기 때, 내 장학금 70만원 중 35만원을 떼어서 유진이에게 주었다. 아마 유진이도 평생 못잊을 거다. 나는 그 때 유진이에게, 돈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니까ㅋ 라고 했다. 그리고 실제 유진이는 내가 하지 못한 몫을 많이 해줬다. 그리고 그 유진이는 지금 성대 교직원이 되었다.


내가 18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성철이 형의 변화과정이였다.

성철이 형은 무용과인데, 24살 먹고 입학해서... 선생님의 미움을 받고 무용과에서 쫒겨났었다. 다행히 형이 공부를 잘해서, 경영학과 복수전공을 하고 있었다. 형은 예대기도모임에서.. 무용학과 얘기를 하며, 여러번 울었었다. 그 때 형은 매우 위축되고, 소심했다. 그리고 같이 선본할 친구가 없었기에.. 예대기도모임에서 만난 나를 선본으로 정 한 듯 했다. 그런데, 그 형이 졸업할 때 쯔음에 형은 아주 멋있게 변해있었다. 자신감도 많고, 능력도 뛰어나고, 그런데.. 예술에 대한 - 예술을 하지 못하고 타의에 의해 마쳤다는 안타까움이 그 안에 있는 듯 했다. 형은 지금 롯데 백화점에 근무하고 있다.


내가 가장 슬프고, 안타까웠던 것은.. 성배와의 관계였다.

성배는 좋은 친구고, 참 똑똑한 친구인데... 사교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와 대화하며 풀기보다, 나중에 크게 빵 갈등이 터져, 결국 학생회 마무리가 좀 좋지 않게 되었었다. 나도 성배와 마음의 앙금이 있다가, 올해 성균관대학교 기독인연합 개강 예배 때, "성배야 사랑한다."고 해서, 내 마음의 짐을 덜었다만.. 18대를 마무리 할 때, 좋지 않게 끝난 것에 대해 안타까운 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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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

내 안에서 갑자기 빛나며 따스히 느껴지는건

그 분은 내게 안 좋은 걸 주실 분이 아니다.
그 분은 내 기도들을 들으셨다.
그 분은 내 아버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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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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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와 잘못과 책망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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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연기하는건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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