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와 현실은 모자이크로 요약되기에는 그것이 깊고, 복잡하여 힘들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이해하기 편하기에 이렇게 한다.

 

나의 부족을 양해해 주시길.

 

 

 

 

 

설빙은 맛있다.

 

 

모세도 나처럼 너처럼 하나의 모자이크 조각이야. 그 조각들 수들은 수천억개지.

 

그리고 그 전체 그림을 디자인하고, 완성하는 건 예수 그리스도야.

 

우리는 하나의 조각이지.

 

모세는 히브리 민족을 구원해낼 인도자로써. 이스라엘을 세우는 리더로써 조각이였어.

 

그가 인생에 대해 받은 그림은 그러한 것이였고.

 

주님은 그 그림이 나올 수 있게. 모세가 파라오의 손에 자라고, 교육받을 수 있도록.

 

또 모든 걸 버리고, 외면하고 떠날 수 있게 만드셨지. 모세의 손에 지팡이를 주셔서

 

기적들을 행하게 하셨어. 그래서 그 그림은 실제가 되었지.

 

 

 

 

나도

 

너도

 

시기에 따라

 

계획된 그림들이 있어.

 

그것은 당장 보이진 않지.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그림을 실제로 만드실꺼야.

 

우리는 그 그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에 있는 중이고.

 

 

 

 

지금, 너의 그림은

 

당장 수능을 잘보는 거야.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거야.

 

지금, 너에 대한 나의 그림은

 

너를 서포트 하는 거고.

 

 

 

 

나는 내가 모세같은 인물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았어.

 

모세의 그림은 아주 많은 것들이 준비되고, 동시에 모세는 피조물로서는 전무후무한 드라마

 

들을 겪었기에. 그 그림이 나올 수 있었던 거야.

 

오늘 나는 나의 그림을 본 것 같았어.

 

그것은 모세와 같진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흐릿하게 나마, 살짝, 부분적으로나마 보여주는 것이였어.

 

사람들에게. 그 칼라들을 알려주는 것이였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매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 돌아오게 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그게 나의 그림이야.

 

 

이 그림을 위해 사람들에겐 각기 주어진 Gift들이 있어.

 

내가 오늘 쓴 글들. 2개는 <이집트 왕자>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며, 든 생각들이였어.

 

남들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재밌는 애니메이션을 보는 동안.

 

머릿속에는 폭풍과 세계가 펼쳐졌어. 이게 내가 그림이 되기 위한 Gift 중 하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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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는 흑기사, 거친 남자. 근육질의 그런 사람이 아니다.

 

아주 세련되고, 매너 있고, 착하고, 잘생겼다.

 

고귀하며, 칼라는 화이트에 가까운 '프린스'다.

 

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섭렵해왔지만. 결코 다른 여자앞에선 그 여자 외에는 이름이나

 

존재를 말하지 않는다. 그게 매너라고 생각하니까.

 

 

 

그 매너적인 바람둥이, 카사노바는

 

일반의 여자들이 생각하기에 '착하고, 친절 하고, 똑똑 하고, 잘생겼고,

 

기품있게 생겼고, 나를 유독 배려하는' 남자 라 생각할 지 모르나;

 

 

실상은 이 여자 저 여자와 자고,

 

즐기고, 외로우면 이 여자와 만나고.

 

 

자신의 잘생김과 좋은 습관과 매너, 그리고 친절을

 

충분히 알고 있으며, 이용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존재다.

 

 

 

 

 

 

내가 이 카사노바를 '자신만의 남자' '백마 탄 왕자'로 생각해 자기의 몸을 내준 여러 여자들을 옆에서 실제 보아왔기 때문에. 해주는 말이다.

 

그리고 카사노바로부터 내가 소중히 아끼는 동생을 지킨 적도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조심해.

 

어리석고 순진한 여자들이여.

 

 

그는 거친 남자가 아니라, 백마 탄 왕자일 테니까.

 

폭력적이 아니라, 매너있고 젠틀하며 기품있을 테니.

 

 

어떤 남자보다도 첫 인상이 좋고, 신뢰가 가는 행동들을 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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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할 일

카테고리 없음 2014. 8. 1. 16:50

내 할 일을 알게 되었다.

 

내 인생의 미션.

 

오늘 <이집트 왕자>를 보았는데,

 

모세는 파라오와 형제였고. 사랑했고. 자신은 파라오의 아들이였다.

 

한 가족이였고. 그들에게서 교육을 받았고.

 

 

그리고 수십년을 미디안 광야에서 초라하게 살았다.

 

그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외면했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았다. 죄책감.

 

 

 

그의 모든 자아는 자신이 히브리 노예출신이란 걸 알게 되면서부터 파괴되었고.

 

혼란 속에 죄책감에. 뒤섞여 살다.

 

 

하나님을 만나, 새롭게 개혁되었고.

 

모든 것 앞에.

 

자신의 민족과

 

자신의 가족 파라오 앞에

 

모든 것 앞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직면하게 되었다.

 

'인간에 불과한 자아는 파괴와 소멸, 창조와 고통 그리고 사랑과 살아감'을 반복해 나갔다.

 

 

 

아주 개인에게 있어선

 

슬프고 위대한 이야기다.

 

모든 걸 버리고 싶고, 모든 걸 놓칠 수 없는 삶이였다.

 

 

 

 

 

 

나 같은 피래미는 감히 견딜 수 없는 인생이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이고, 사람이였다.

 

그래서 감히 이스라엘의 첫 지도자가 된 것이였겠지.

 

 

 

 

나는 그 깊이와 그 안의 드라마들.

 

감정들.이 끌어올려진 것을 보고 놀랐다.

 

이게 하나님의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 택스트들. 건조한. 그냥 글자들에 지나지 않던 곳 속에

 

인간들은 살아 있었고. 텍스트들이 드러내지 못했던

 

수많은 '관계와 사랑과 아픔들'이 있었다.

 

 

 

 

나는 그 일을 할 것이다.

 

그거면 족하다. 그게 내 일이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

 

부족한 죄인에게 맡겨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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